
교회에서 예배드리고 밥을 먹는데 한
아이가 혼자 밥을 먹는 거야.
그런데 그 모습이 일상적이지 않았어.
아이가 너무나 예쁜데 더러웠어.
옷은 꼬질꼬질했고 언제 씻었나 하는 생각이 들고,
목에는 아파트 열쇠를 걸고 있었어.
저렇게 예쁜 아이를 세상에 저렇게
내 보낸 부모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.
게다가 이상한 것은 식판에 밥을
한가득 담고 밥을 먹고 있었어.
성인 남성인 내 식판은 비교가 되질 않을 정도였어
저 아이 우리 학교 학생 아닌가?
다음날 학교에 가서 저학년 교실을
기웃기웃해서 찾았어 1학년이었어.
그래서 담임선생님에게 슬며시 가서 물어봤지
"혹시 저 학생 가정환경에 대해서 말해 줄 수 있어?"
"왜요?"
"교회에서 봤는데 일상적이지 않았어"
"말하기가 좀 곤란한데 선생님 실은
저 아이 지금 혼자 살아요.
아빠는 60넘은 고령이신데 지방에 일하러 가시고,
엄마는 집을 나갔다고 했어요."
"그래서 그랬구나. 그러면 평소에 누가 관리는 해 주는 거야?" 지금은 상상할 수 없지만 그때가 지금부터 20년 전이니까, 복지 사각지대가 많았을 때야.
"선생님 저 아이 수업 끝나면 도서관으로 보내주세요"
드디어 수업이 끝나고 담임선생님이
아이와 함께 도서관으로 왔어.
"안녕, 난 도서관 선생님인데 오늘부터 수업이 끝나면
도서관에서 나랑 같이 놀래?"
그때부터 난 그 아이랑 도서관에서 놀았어.
1학년 중반이 지나가는데 아직
한글을 제대로 읽지 못해서 한글도 알려주고,
받아쓰기도 하고, 읽기도 쓰고, 책도 읽어주고,
진짜 그냥 놀았어.
그때 사귀던 지금은 아내가 된 여자친구에서 부탁해서
아내 집에서 씻겨주고, 빨래도 해줬어.
내가 아는 인맥은 다 동원한 것 같아.
사회복지 담당공무원에게 읍소해서 사실 복지대상은
아니지만 받을 수 있는 거나 도움이 될 수 있는 거
부탁드린다고 하고, 아이의 존재를 알려드렸어.
부녀회장님에게 가서 회장님을 감동시켜서 주민들이
돌아가면 반찬도 해 주셨어.

난 이런 일을 할 때는 정말 뻔뻔해 지거든
동료교사에게 당당하게 말해
"선생님 딸 입던 옷 좀 주세요" 교회에 가서는
치과를 운영하시는 분에게 말해
"진료봉사 좀 해 주세요" 교장 선생님께도 요구했지
"이 학생 점심 공짜로 주세요."
그렇게 3개월쯤 지났을 때, 아이의 아버지가 찾아오셨어.
10만 원이 든 봉투를 들고 오셨더라고.
고맙다면서 다시 자기는 지방에 내려가야 한다는 거야.
아버지는 정말 3-4개월에 한 번씩 나타나시더라.
우리는 그렇게 일 년 넘게 지냈어.
점심시간이 지나면 도서관에 와서 같이 책 보고,
산책하고, 운동하고, 수다를 떨었지 같이
구구단도 외우고, 동요도 부르고, 숙제도 했지
그래도 늘 마음은 무거웠어.
저녁이 되면 같이 밥 먹고 아이를 집에 데려다주는데,
아이 혼자서 잠들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늘 무거웠거든
생각해 봐 초등학교 1학년이 혼자 집에서
텔레비전을 보다가 잠드는 모습을
2년쯤 지났을 때
난 사정상 어쩔 수 없이 다른 지역으로
이사를 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어
아버지가 돌아오셨을 때 부탁 했어
"아버님, 기분 나쁘게 듣지 마세요.
혹시 아이가 아버지께서 출타하셨을 때
고아원에서 보내면 어떨까요?
요즘은 고아원이 아버님처럼 환경이 어려울 때
아이들이 거주하다가 아버지가 보고 싶으실 때나 다시
데려가고 싶으실 때 언제든지 다시 데려갈 수 있습니다.
제가 이제 멀리 떠나게 되었는데
아무래도 아이가 혼자 있는 것은 좋지 않을 같습니다.
제가 아는 분을 통해서 아이의 상황을 말씀드렸는데
아버님의 뜻대로 하실 수 있게 언제든지
아이를 돌보아 주겠다고 하셨습니다."
사실 아버지의 반응이 걱정되었는데
흔쾌히 그렇게 가능하냐면서
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는데 만감이 교차했어.
내가 이사를 가던 날에
아이의 집에 100권의 책을 선물했어.
아이가 꼭 읽었으면 하는 책을
아이의 나이에 맞는 책부터 점점 자라는 나이에 맞게
사놓았어 그리고 모든 책의 앞장에 편지를 썼어
"사랑하는 연화에게,
난 이 책을 읽고 너에게 주고 싶었어"
그러면서 100권의 책과 100개의 추천 이유와
100개의 나의 사연과 100개의 해결책을 담아주었어.
그 후로도 자주 연락했고, 주변의 사람들에게도
자주 부탁하는 전화를 하고, 가끔씩 찾아갔지
중학생이 되면서 아버지와 함께 이사를 가고
연락이 끊겼어.
그런데 아이가 스무 살이 되었을 때 연락이 왔어.
주변 사람들에게 수소문을 해서 전화를 했더라고
"선생님 저 연화예요. 저 대학생 되었어요.
한참을 대견하다고, 자랑스럽다고 칭찬했어.
간신히 눈물을 참으면서 대화를 이어갔지
"선생님, 저 선생님이 주신 책 다 읽었어요.
밤에 무서울 때, 고아원에 갈 때, 싸웠을 때,
서러울 때, 그리울 때마다 책을 보았어요.
지금은 이사 다니면서 책이 사라졌지만
마지막까지 '사랑하는 아빠가'는 가지고 있어요.
너무 고마워요 선생님. 저도 문헌정보전공해요 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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